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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드 하우스 30주년

애시드 하우스 30주년

올해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가장 주요한 움직임들 중 하나가 탄생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글: MARTIN VANNONI & HERNÁN PANDELO / Binna Kim (번역)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가 탄생한 때는 30년 전 여름이다. 1980년 말부터 1990년 초까지 사실상 모든 DJ들에게 영향을 준 하나의 일렉트로닉 뮤직 스타일로서, 일렉트로닉 음악에 있어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면서, 이 놀라운 음악 스타일의 토대를 형성한 아티스트들, 트랙들, 그리고 레이블들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언급하자면, 이름 자체가 말해주고 있듯 애시드 하우스는 하우스 음악의 서브 장르이고, 하우스 음악은 몇 년 동안 클럽 씬에서 널리 유행하던 장르로, 시카고의 여러 클럽들에서 레지던트 DJ를 했었던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 론 하디(Ron Hardy), 릴 루이스(Lil Louis) 와 같이 굵직한 인물들이 주도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디스코 음악의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하고 하우스 음악이 붐을 일으키면서, 라디오 방송국과 레코드 레이블 및 제작사들이 이 음악 스타일을 밀고 나가는데 협력하기 시작했고, 이 장르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던 한 프로듀서 집단이 Roland TB-303 신디사이저를 가지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이 스타일은 계속해서 퍼져나가면서 유럽을 비롯한 몇몇 국제적인 시장에도 전파되었을 뿐 아니라, 영국에서는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결국 전 세대들을 젊음의 혁명으로 끌어들이게 한 완벽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썸머 오브 러브

런던의 클럽 ‘슘(Shoom)’은 1987년 11월에 오픈했다. 대니 램플링(Danny Rampling)과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이 곳은 영국 본토에 애시드 하우스를 초기에 소개한 클럽들 중 하나이자, 수 백 명의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새로운 음악 스타일로 이끌어준 역할을 하였다. 이 곳은 매우 폐쇄적인 장소로써 짙은 안개로 가득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애시드 하우스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두 번째 썸머 오브 러브(Second Summer of Love)’ 라고 불리는 움직임이 이 시기 즈음 몇몇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1970년대 미국에서 유명했던 ‘썸머 오브 러브(Summer of Love)’에서 가져온 타이틀이다. 이는 축구 훌리거니즘이 잠잠해지면서 더욱더 각광받기 시작했고, 축구팬들은 싸움을 벌이는 대신 클럽에 가서 항정신성 마약 효과에 취한 파티인들 틈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슘은 그 지역에 애시드 하우스를 들여온 첫 번째 클럽이었고, 많은 이들에게는 일종의 삶의 방식이 되기도 했다. 이 클럽은 ‘휘트니스 센터(Fitness Centre)’라는 체육관 안에 위치해 있었으며, 300명을 수용 가능한 규모로, 내부 벽들은 거울로 되어 있다. 또한,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의 보이 조지(Boy Goerge)와 폴 러더퍼드(Paul Rutherford) 같은 아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80년대의 클럽들은 술과 폭력을 좋아하는 멍청한 이들이 가득한 장소로, 영국에서 꽤나 거친 곳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피트 헬러(Pete Heller)가 ‘더 가디언(The Guardian)’ 에서 털어놓은 바 있다. 헬러는 램플링(Rampling) 클럽이 버즈비(Busby)라는 이름으로 재 오픈 하기 전에 그곳에서 디제잉을 했었다. ‘그러나 슘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오픈 마인드의 긍정적이고 친근한 분위기를 고집했다. 그러한 분위기에 열려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어울릴 수 없을 것이다. 거의 암묵적인 약속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곳은 한쪽 구석에 숨어 편안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슘은 스위트 박스 같은 곳이었다.

 

전 세계로 확장

이 무렵 이듬해 6월에 트립(Trip)이라는 클럽이 오픈해서 DJ 인 닉 홀로웨이(Nick Holloway)가 운영했다. 그는 1987년도에 대니 램플링(Danny Rampling), 조니 워커(Johnny Walker), 폴 오켄폴드(Paul Oakenfold)와 오켄폴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이비자로 여행을 했었는데, 이 4인방은 기막힌 발레아레스식 사운드에 영감을 받은 채 돌아왔다. 트립은 런던의 웨스트엔드에 위치하면서, 애시드 하우스 음악 씬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며, 취객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고성방가를 하고 경찰과 실랑이하는 것이 흔한 시간대인 새벽 3시까지도 계속 운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엄격한 반(反) 클럽 규제들과 더불어, 이와 같은 사건들이 결국 좋지 않은 평판들을 형성하게 되면서, 평상시의 클럽 분위기로는 이벤트를 진행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0년대 런던에서 영업 시간 외의 클럽 이용이 법에 충돌되어 불법으로 간주되면서, 클럽을 찾는 집단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해 창고나 산업 단지 등에서 비밀리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곧 레이브 파티가 발전하게 된 첫 단계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잘 알려진 두 그룹은 썬라이즈(Sunrise)와 레볼루션 인 프로그레스(Revolution in Progress, RIP)인데, 썬라이즈는 막대한 아웃도어 이벤트를 열었었고, RIP에서는 어두운 분위기와 하드한 음악으로 구성된 이벤트들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썬라이즈 그룹은 영국에서 애시드 하우스 레이브 파티를 몇 번 개최했었으며, 매체의 관심을 불러모으면서 진지하게 다루어지기도 했다. 1988년 8월에는 라이게이트(Reigate) 인근의 서리(Surrey)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애시드 하우스 레이브라고 할 수 있는 파티를 개최했었다. 이벤트는 학교 인근 장소에서 열렸으며 토요일 밤 10시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약 2만명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차량들이 5km 이상 줄을 잇고 있었다. 이 이벤트는 매체에서도 의미 있게 취재되었다. 그때 이후로, 애시드 하우스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장르로 여겨지면서,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입지를 단단히 굳히게 되었다.

 

기원

애시드 하우스의 초기 레코딩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늘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일반적으로는 특유의 TB-303 사운드가 주는 전형적인 애시드 사운드로써 그룹 퓨처(Phuture)의 ‘Acid Trax’가 이 장르에서 가장 초창기의 예로 간주된다. 퓨처의 멤버인 디제이 피에르(Pierre)는 이 곡이 1985년 초에 작곡되었지만 1987년까지는 발매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1986년에 바이닐로 발매되었던 슬리지 D(Sleezy D)의 ‘I’ve Lost Control’을 지목하면서, 이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트랙이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것이 이 장르의 선구적인 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확실한 것 한가지는 ‘I’ve Lost Control’이 바이닐로 발매된 첫 트랙이라는 것이고, 두 곡 모두가 이 장르가 꽃피울 수 있게 한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전부 마약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라고 대니 램플링(Danny Rampling)이 2017년 11월 가디언(The Guardian)에서 말했었다. ‘그렇다. 혁명적이고 새로운 음악인 애시드 하우스가 들어오면서, 그와 함께 자극적인 흥분제인 엑스터시가 따라 들어온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마치 바늘과 실처럼 함께 다녔고,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긍정적이고 심오한 경험을 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경험들이 주로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면서, 그는 일렉트로닉 음악계의 중요한 시기 중 하나였던 그때 당시와 당시 영국 사회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시엔다(The Hacienda)의 레지던트 DJ이자 당시의 상황을 직접 경험한 작가인 데이브 해슬람(Dave Haslam)은 당시 상황을 애시드 하우스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폭발한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정립해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예를 들어, ‘옷 입는 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구두를 신어야 할까 운동화를 신어야 할까?” “티셔츠를 입어야 할까, 아니면 정장을 입을까?”를 고민하곤 했다. 1988년 초까지, 어깨에 패드를 댄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시엔다로 오곤 했었는데, 불현듯 온통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는 사람들로 풍경이 바뀌었다.

런던에서는 델리리움(Delirium)의 모리스(Maurice)와 노엘 왓슨(Noel Watson), 캠든 팰리스(Camden Palace)의 콜린 페이버(Colin Faver)와 에디 이블 리처즈(Eddie Evil Richards), 헤븐(Heaven)의 제이 스트롱맨(Jay Strongman)과 마크 무어(Mark Moore), RAW의 데이브 도렐(Dave Dorrell)과 같은 몇몇 디제이들이 하우스 음악을 처음으로 틀었지만, 1988년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폭발했다. 대니 램플링(Danny Rampling)의 슘(Shoom), 니키 할로웨이(Nicky Holloway)의 트립(Trip), 그리고 폴 오켄폴드(Paul Oakenfold)의 스펙트럼(Spectrum)은 수도권 씬의 메인 베뉴들이었고, 북부에는 맨체스터의 아시엔다와 셰필드의 자이브 터키(Jive Turkey)가 있었다.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고, 당신이 겪어본 그 어떤 경험과 차별되는 경험이었다,”라고 케이클라스(K-Klass)의 폴 로버츠(Paul Roberts)가 당시를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의 상황을 전 세계에게 알려주고 싶은 바람과 비밀스럽고 특별하게 지켜줘야 할 필요성 사이를 오고 가며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분은 언더그라운드 운동을 실제로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나 느낄 수 있는 내면의 갈등이 아닌가?

허나 이번에는 비밀로 할 수 없었다. 애시드 하우스의 인기는 1988년 여름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급격하게 폭발했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 일어난 이 현상은 입 소문을 타면서, 생생한 경험을 앞다투어 체험해보고자 클럽으로 몰려들었던 열성적인 팬들로 인해 클럽을 찾는 사람들도 매 주가 다르게 증가되었다. 이 혁명은 너무도 크게 진전되어, 마침내 클럽 밖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썸머 오브 러브’에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은 길을 지나갈 때 서로를 알아보았다. 복장, 헤어 스타일, 그리고 버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이 새로운 분위기의 클럽에서 춤 출 수 있는 주말만을 기다리며 멍한 미소를 짓는 것은 그들만의 특유한 암호와 같은 것이었고,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클럽에 물이 든 사람들과 비록 조만간 때가 올 것이지만 아직 개종되지 않은 사람들로 집단이 나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애시드 하우스는 줄곧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애시드 하우스 클래식>

슬리지 D(Sleezy D) – “I’ve Lost Control”

Trax (1986)

알려진 바로는, 마샬 제퍼슨(Marshall Jefferson)의 ‘I’ve Lost Control’은 바이닐로 발매된 최초의 애시드 하우스 트랙이었다. TR-808 드럼 비트 위에 얹혀진 TB-303 베이스 신디사이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무서운 분위기의 보컬은 고음으로 올라갈 수록 자제력을 잃는 듯 하다. 마샬 제퍼슨이 쓴 곡 중에서 가장 애시드한 곡이다.

 

 

아르만도(Armando) – “Confusion’s Revenge”

Westbrook Records (1987)

1987년 아르만도 갤럽(Armando Gallop)은 Westbrook Records 를 통해 ‘Land Of Confusion’이라는 제목으로 폭풍적인 애시드 곡을 발매했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303이 주인공이지만, 이번에 사용된 드럼 머신은 TR-707이었고, 808은 보다 둥글둥글한 아날로그 분위기를 냈던 반면, 707은 비트에서 덜컥거리는 느낌이 더 강하다. 1988년에 발표된 한 애시드 하우스 컴필레이션 앨범에 리메이크 작 ‘Confusion’s Revenge’가 수록되어있는데, 이 곡에서는 애시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가 훌륭하게 가미됨으로써 몽롱함을 한 층 더하였다.

 

밤 밤(Bam Bam) – “Where’s Your Child”

Desire (1988)

아르만도의 ‘Land Of Confusion’을 발매한 Westbrook Records 은 밤 밤으로 더 잘 알려진 크리스 웨스트브룩(Chris Westbrook)의 레이블이다. 그의 전성기 시절에 발표된 이 트랙은 지속적인 808 비트에 피치가 다운된 보컬과 악마 같은 소리들이 들어간 곡이다. 웨스트브룩에서 밤 밤이 발표한 애시드 하우스 곡들 중 하나이다.

 

 

찰스 B & 아도니스(Charles B & Adonis) – “Lack of Love”

Desire (1988) 

Desire 레이블을 통해 영국에서 발매된 또 다른 트랙이다. 이펙트를 넣지 않은 리얼 보컬이 나오고, 여러 섹션에서 비트가 바뀌며, 피아노 선율이 등장하고, 환상적인 애시드 불꽃들이 터지는 곡으로, 애시드를 좀 더 전통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아도니스의 훌륭한 작품이다. 시카고 출신 선구자들이 발표했던 많은 뛰어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모리스(Maurice) – “This is Acid”

Trax (1988)

많은 이들은 이 곡을 애시드 하우스를 대표하는 주제곡으로 여기곤 한다. 모리스가 애시드하고 펑키한 라인을 따라 동일한 구간에서 랩을 하고 있고, 그 시대의 많은 음반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808 카우벨 소리가 등장한다. ‘This is Acid’는 다른 두 뛰어난 애시드 곡인 ‘Feel The Mood’와 ‘I Got A Big Dick’과 같은 EP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패스트 에디(Fast Eddie) – “Acid Thunder (AA AACCID)”

DJ International (1988)

상징적인 아티스트 패스트 에디의 Jack To The Sound LP에는 이 트랙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됐는데, 현악기와 보컬이 등장하는 다소 느끼한 넘버지만, 이후 바이닐로 발매된 버전은 순수 애시드 사운드이다. 303과 808의 훌륭한 사운드와 애시드 분위기를 결코 잃지 않는 극적인 결말을 특징으로 한다.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다.

 

 

퓨처(Phuture) – Acid Tracks

Trax Records (1987)

이 곡의 원래 제목은 ‘In Your Mind’이다. 그러나, 퓨처 장르 DJ 인 피에르(Pierre)는 론 하디(Ron Hardy)에게 이 트랙이 담긴 테이프를 건네면서 시카고에 있는 Muzic Box에서 틀게 했으며, 하디는 이 곡을 ‘Acid Tracks’라고 이름 붙였다. 후에도 이 제목으로 굳어지면서 급기야 앨범에도 같은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피에르의 말에 따르면 테이프 제목에 있는 ‘애시드’는 LSD를 지칭한 것이었다. Roland 303의 사운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간에, 이 곡 제목은 후에 장르 전체의 이름으로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11분 동안 반복되는 ‘Acid Tracks’는 많은 사람들에게 애시드 하우스의 주제곡과 같은 대표적인 곡이 되면서, 여전히 클럽에서 플레이 되고 있는 이 곡은 시대를 초월한 장수 곡으로 남아있다.

December 13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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