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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서 정상까지

침실에서 정상까지

호주의 음악 천재 Flume을 만나다

Words: Kevin Kang

침실에서 음악을 작업하는 프로듀서를 뜻하는 베드룸 프로듀서(Bedroom Producer)들에게 있어 플룸이라는 아티스트는 존재만으로도 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바이닐이나 화려한 장비로 가득한 스튜디오 없이 그는 랩탑 기반의 셋업으로 쳇 페이커(Chet Faker)와 더불어 호주에서 전자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두 번째 앨범 ‘Skin’으로 2017년도 59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을 수상했고, 2016년 히트곡 ‘Never Be Like You’가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3억 8000만 스트리밍을 기록하는 등, 화려한 수식어들이 그의 이름 뒤에 따라온다.

플룸은 2012년 발매한 동명의 데뷔 앨범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21살에 이미 일렉트로닉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은 R&B, 소울, 힙합, 팝까지 방대한 장르적 요소를 결합한다. 신선한 보컬 찹부터 참신한 싱코페이션과 디테일한 사운드 디자인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플룸만의 브랜드를 완성한다.

올 해 일본의 서머 소닉 페스티벌(Summer Sonic Festival) 라인업에 플룸이 등장한 이후로 많은 이들이 그의 내한 소식을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매년 굵직한 라인업을 섭외하는 믹스맥 코리아(Mixmag Korea)가 이번 광복절을 맞아 플룸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서포트 라인업에는 호주 출신의 쌍둥이 이인조 밴드 코스모스 미드나잇(Cosmos Midnight)과 LA 기반 콜렉티브 소울렉션(Soulection)의 멤버이자 DJ/프로듀서 카맥(Mr. Carmack)이 함께했다. 로컬 라인업에는 아빈(AVIN), 트랩, 테크노 기반의 강력한 선곡으로 유명한 킹맥(KINGMCK), 클럽 소프(Soap Seoul)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루 딜럭스 서울(Deluxe Seoul)이 등장해 무대를 장식했다.

행사 당일, 한껏 들뜬 마음이 무색하게도 이른 오후까지 비가 내려 상당히 걱정이 많았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집에서 나와 한강 난지공원행 버스에 몸을 싣고 이동했다. 다행히도 비가 서서히 줄더니 도착할 즈음이 되니 하늘이 서서히 개기 시작했다.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페스티벌지만 멋진 한강 공원을 배경으로 자리한 단일 스테이지는 공연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휴일 오후에 공원을 찾은 느긋한 사람들과 페스티벌을 방문해 이른 시간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재밌는 광경을 연출했다.

때마침 로컬 라인업의 공연이 있었다. 네 시부터 시작한 로컬 디제이 킹맥(KINGMCK)이 무대에서 강렬한 선곡으로 관객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고, 스페셜 게스트로 래퍼 키스 에입(Keith Ape)이 깜짝 등장해 열광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후에는 쌍둥이 형제로 이루어진 밴드 코스모스 미드나잇(Cosmos Midnight)이 무대에 올랐다. 2012년도에 퓨처 클래식(Future Classic) 레이블이 주관하는 리믹스 대회에서 플룸(Flume)의 ‘Sleepless’를 재해석해 주목받기 시작한 이들은 춤추지 않고서 배길 수 없는 그루브로 관중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멤버 각각 기타와 드럼을 맡아 라이브 셋을 선보인 이인조는 특유의 긍정적인 분위기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고, 먹구름이 잔뜩 꼈다가 갠 하늘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개성 넘치는 여가수 아스타(Asta)가 밴드와 함께했고,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광했다.

디제이 셋과는 다른 라이브 셋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특히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를 통해 자주 스트리밍하던 코스모 미드나잇의 곡들을 라이브로 듣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한국의 관객 앞에서 선보인 미공개 곡들 또한 훌륭했고, 마지막 곡으로 골드링크(Goldlink)의 ‘Dark Skin Women’ 리믹스가 나오자 나를 포함한 모두가 흥분해서 뛰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풀밭과 하늘에 어울리는 멋진 무대였다.

15분간의 인터미션 후, 고대하던 카맥이 무대위로 올랐다. 무성한 수염과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무대를 휘어잡았다. 속세와 척을 진 도인같은 아우라와는 다르게 페스티벌을 의식한 베이스와 트랩 기반의 강력한 선곡을 선보였다. 무대 뒤의 영상 또한 자극적인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눈이 즐거웠다.

해가 서서히 지며 하늘이 형형색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공연 도중 카맥이 “다들 플룸 볼 준비됐어?”라고 외쳤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드레이크(Drake)의 ‘Trophies’ 리믹스가 나오자 모두가 열광하며 뛰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주인공을 기대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졌고, 마치 1시간같았던 15분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플룸이 등장하자 공연장의 열기는 극에 달했다. ‘Hi this is flume’ 앨범의 인트로에 담긴 목소리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부터 “광복절 축하해요”까지 재치 있는 메시지가 화면에 등장하자 장내에 감동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우주복과 볼링자켓이 기묘하게 뒤섞인 듯한 반짝이는 은색 옷을 입고 나온 플룸은 등장한 직후부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기 구체와 함께 무대 앞에 놓인 유로랙(Eurorack)과 그와 연동된 여러개의 롤리 블럭(Roli Block) 셋업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플룸은 마치 우주선의 조종사처럼 장비의 노브를 돌리며 관객들을 자신의 음악 세계로 인도했다.

사방으로 방사되는 화려한 레이저 조명과 함께 디스클로저(Disclosure) ‘You & Me’ 리믹스의 영상이 화면으로 송출되자 모두가 전율했다. 플룸 신스와 함께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는 여름의 더위마저 잊기에 충분했다. 특히 플룸의 초창기 곡으로 유명한 로드(Lorde)의 ‘Tennis Court’ 리믹스가 나오자 너무 반가웠다.

플룸은 공연 외에도 무대 위에서 수많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안녕 플룸입니다’를 스텐실 하고, 화분을 부수더니, 나중에는 철판에 전기톱으로 ‘I love Seoul’ 문구를 새기는 등 본인의 색깔로 가득한 무대를 선사했다.

플룸이 누구인지 몰랐던 사람들도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번 플룸 공연은 강렬하고 신선했다. 마음 속 깊이 기억을 간직하며 내년도 플룸의 내한을 기대해본다.

August 23rd,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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