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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댄스 음악 씬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런던 댄스 음악 씬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BBC Radio 1의 전설적인 테이스트메이커, Benji B

Words: Kevin Kang

런던 출신의 DJ/프로듀서이자 라디오 호스트로 잘 알려진 벤지 비(Benji B)는 무려 16살 때부터 클럽에 드나들며 디제잉을 시작했다. 당시 키스 FM(Kiss FM) 라디오의 자일스 피터슨(Gilles Peterson) 쇼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현재 유럽의 가장 큰 라디오 방송국인 BBC 라디오 원(BBC Radio 1)에서 매주 수요일 밤 본인의 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그는 올해 12년차를 맞는 런던의 클럽 나잇 디비에이션(Deviation)을 기획해오고 있으며,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앨범 ‘Life of Pablo’에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최근 버질 아볼로(Virgil Abloh)로부터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뮤직 디렉터로 지목되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에 런칭한 브랜드 스투시(Stussy)의 세계적인 움직임, IST(International Stussy Tribe)의 한국 첫 파티를 맞아 케익샵(Cakeshop Seoul)에 내한하는 벤지 비의 공연에 다녀왔다.

금요일 밤 이태원은 일주일의 회포를 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들뜬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올해 7주년을 맞는 케익샵은 2012년부터 이태원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책임지고 있다. 오픈 후부터 보이즈 노이즈(Boys Noize), 토키몬스타(Tokimonsta), 캐시미어 캣(Cashmere Cat), FKJ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선보였고, Shade, Femme 등의 LGBT파티를 호스팅함은 물론, 데드엔드(DEADEND), 360 사운즈(360 Sounds), 딜럭스 서울(Deluxe Seoul), 슈퍼프릭(Superfreak)등 화려한 로컬 디제이 크루들이 거쳐간 곳으로 유명하다.

11시경 베뉴에 도착하자마자, 케익샵 앞의 광장에 모여있는 스케이터들이 시선을 끌었다. 간이 램프가 설치되어 있었고, 스케이터들은 IST의 한국 첫 파티를 기념하기 위해 모두 스투시 티셔츠를 입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보드를 타고 있었다. 케익샵의 빨간 네온 조명 아래 벌써부터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새롭게 단장된 스투시 서울 챕터에서 프리 파티를 마치고 온 DJ/ 프로듀서 코나(Kona)를 만나 준비하고 있는 멋진 작업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친구들이 도착할 때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기다림 끝에 마침내 케익샵에 입장했다. 어두컴컴한 지하의 계단을 통과하자 입구 왼편의 “let them eat cake” 포스터와 부스 뒤편의 케익샵 로고가 나를 반겼다. 마침 이 날 큐레이팅을 담당한 다다이즘 클럽(Dadaism Club)의 다솜(Dasom)이 강렬한 선곡으로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있었다. 댄스 플로어가 반도 안 찬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부터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도토리(dotori)와 다솜의 포스있는 비투비 셋을 뒤로하고 마찬가지로 IST파티가 진행중인 이층의 콘트라를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동문이 열리자 바 공간의 환한 조명이 나를 반겼다. 케익샵이 어둠 속에 도발적인 빨간 불빛으로 사람들을 흥분시켰다면, 콘트라는 세련된 실내와 밝은 조명으로 비교적 쾌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바에서 샷을 몇 잔 들이키고 부스를 보니 낯익은 얼굴의 DJ가 플레이하고 있었다. XXX의 멤버로 잘 알려진 DJ/프로듀서 프랭크(Frnk)가 중독적인 애시드 선곡으로 플로어의 열기를 한껏 달궜다.  두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한 파티였지만, 엄청난 라인업 덕분인지 두 곳 모두 사람들이 많았고, 에너지 또한 대단했다. 콘트라의 차가운 조명아래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거의 한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오늘의 헤드라이너 벤지 비를 보기 위해 서둘러 케익샵으로 이동했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입장한 케익샵은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입구부터 빽빽한 인파를 헤치고 디제이를 보기 위해 앞으로 이동했다. 하우스 듀오 쎄끼(C’est Qui)의 멤버 클로젯(Closet Yi)이 하우스 기반의 신나는 셋을 선보였다. 그녀의 음악답게 귀엽고 그루브가 살아있는 곡들로 메인 게스트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오늘의 주인공, 벤지 비가 부스 뒤에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등장하자 열렬하게 환호했다. 클로젯의 하우스 셋에 이어 하우스로 시작한 그는 프로답게 곧바로 뱅어를 선보이지 않고, 서서히 그만의 페이스로 무대를 장악했다. 2시간의 셋이었지만 엄청난 라디오 호스트 경력을 자랑하는 그답게 수많은 장르를 선보였다. 어색하게 흐름을 끊지 않고도 능수능란하게 그라임, UK가라지, 힙합, R&B를 넘나드는 선곡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우스로 시작한 셋은, R.I.P 프로덕션스(R.I.P Productions)의 ‘Oh Baby’와 같은 UK 가라지를 거치며, 어느새 스톰지(Stormzy)의 ‘Wiley Flow’, 보이즈 노이즈(Boys Noize)가 프로듀싱한 에이셉 라키(A$AP Rocky)의 ‘Babushka Boi’등의 그라임과 힙합으로 변화했다. 음악 취향에 상관없이 모두가 벤지 비가 인도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음악을 즐겼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엄청난 한 시간 이었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셋의 후반부였다. 지금까지는 후반부를 위한 준비운동이었다는 듯 벤지 비는 제이지(Jay-Z)의 ‘U Don’t Know’를 시작으로 주옥 같은 추억의 힙합과 R&B뱅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M.O.P의 ‘Ante Up’을 틀자 모두가 손을 흔들며 미친 듯이 뛰었고, 베이비 앤 클립스(Baby & Clipse)의 ‘What Happened to That Boy’와 N.O.R.E의 ‘Nothin’’이 나오자 모두가 2000년대 초반의 향수에 취해 한마음으로 떼창했다. 비기(Biggie)의 ‘One More Chance’과 맙 딥(Mobb Deep)의 ‘Shook Ones (Part II)’ 같은 힙합 명곡들도 큰 재미를 선사했고, 클럽에서는 들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셔(Usher)의 ‘U Don’t Have to Call’에 모두가 춤을 추는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피크 타임에 걸맞는 최고의 셋이었다.

벤지 비의 엄청난 공연을 마친 후, 시간은 어느덧 세시가 되어있었다. 귀가하기 전 마지막으로 콘트라에 들려 킹맥(Kingmck)과 앤도우(Andow)의 비투비 셋을 감상했다. 데드엔드부터 호흡을 함께 맞춰왔던 이들답게 강력한 트랩과 힙합 기반의 선곡을 선보였고, 벤지 비의 여운을 달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돌아보며, 하나의 브랜드에서 시작한 움직임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국경와 문화를 떠나 서브컬쳐 씬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멋진 파티였다. 오래 전부터 라디오 디제이로 이름을 날린 벤지 비를 실제로 만나보게 되어 반가웠고, 다음 번에도 서울에 방문하길 기대해본다.

 

 

 

 

October 11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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